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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천재들의 양산박 '포항공대' 유람기   원문복사 링크복사
[분야] 교육 [작성자] 류재용 [작성일] 2008.12.24. 19:20

업무 출장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포항을 갔습니다. 외지인에게 포항은 '포항제철'과 '포항공대'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한 도시입니다. 요즘들어 과메기와 영일대군이 새로 뜬다고는 해도,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지금 한 때겠죠. 영원과 순간이 한 도시안에 있는 셈이랄까?

포항제철과 포항공대는 100년 후에도 지금의 명성을 이어나갈테니, 살아 생전에 한 번쯤 담벼락 밑에서라도 직접 눈으로 볼 만한 곳이죠. 그런데 공항 옆에 홍보관까지 차려둔 포항제철과 달리, 포항공대는 구경하기 좀 난해합니다. 이름그대로 '공과대학'답죠.

포항공항에서 200번 좌석버스를 타고,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가 길 건너 105번 버스를 타고 좀 가야 합니다. 길이 안 막힌다면 한 30분이면 충분히 포항공대에 들어가긴 하는데, 은근히 넓은데다 바다에서 산으로 바로 이어져서 요즘같은 겨울에는 만만찮은 길입니다.


105번 버스에서 '포항공대'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내리면 '동문'이 나옵니다. 나중에 홍보팀 직원분 말로는 그 전에 내려서 건물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는 게 뚜벅이에게는 그나마 나은 길이라는 조언을 듣긴 했는데, 초행길이라 정석대로 갔습니다.

동문 앞에서는 '시설 안내도'를 볼 수 있습니다. 부지 내에 어디에 뭐 있나 알려주는 시설물인데, 한 가지 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다른 곳은 기숙사가 제일 안 쪽인데, 포항공대는 제일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런 곳은 가본 곳 중에서는 서울대학교 정도가 더 있죠.

지도로 보면 까마득 하지만, 동문에서 걸어서 올라가면 한 300m 정도면 슬슬 강의동들이 보입니다. 각도가 험악한 건 아니라서 산책하듯이 슬슬 걸어 올라가기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워낙 넓고, 시설물들이 다 떨어져 계시다보니 차가 있긴 있어야 합니다.


20년 전에 인텔리전트 기숙사(?)로 지었다는 포항공대 기숙사인데, 여기서 살자면 차가 있긴 있어야 합니다. 아까 지도에서 본 강의동만 오가는 생활이 아니라 지도에 안나온 시설물들까지 돌아다니자면 차가 생필품 수준입니다.

학교가 미국 컨셉(?)으로 지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포항공대 학생들이 꼭 학내 시설물들만 오가는 게 아닌데다가, 학교 부지밖에 학교 시설물을 짓는 경우가 많아 걸어다니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효자동 고개 넘으면서 본 포항공대 시설물이 몇 개인건지, 공사판 많습니다.

공사판들이 모두 포항공대 시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대부분 대학원 또는 산학협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연히 포항공대 학생들은 취업걱정과는 무관하게, 들어올 때부터 나가서 할 일이 정해진 사람들이라 그들만을 위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녁에 본 캠퍼스는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스산한 분위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겨울인 것도 있었고, 방학인 것도 있었죠. 홍보팀 관계자 분 말로는 집에 안가고 다들 어디선가 연구나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데, 밖에서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밖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인도인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커플은 딱 한 커플만 봤습니다. 참으로 한국 같지 않은 이국적인 분위기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내일 모레인데, 커플 없는(아니, 적은) 대학이라니...!


포항공대야 요즘은 외국 대학마냥 포스텍(Postech)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부른다고 합니다만, 옛날 사람들 입에는 포항공대가 더 짝짝 붙는 맛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세대'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포항제철을 요즘 포스코(Posco)라 부른다지만, '제철입국'이라는 말이 있어 '포항제철'이 더 믿음직스러운 이름으로 들립니다. 아무튼. 이 둘의 관계는 참으로 찰떡궁합입니다. 대학본부 지나가면 볼 수 있는 표지석, 꽤 의미심장하죠. '그 분', 가끔 와서 골든벨도 치신답니다.



포항공대 홈페이지에서 학교를 대표하는 것으로 첫 손에 꼽는 '시계탑'이 뭔가 했는데, 그 정체는 위 사진에 보이는 저 것들입니다. 건물 디자인이 0도와 45도와 90도로만 조형되어 있어 참으로 각진 가운데, 거기다 '정확'의 상징인 시계까지 탑으로 여기저기 꼽아뒀더군요.

아는 포항공대 졸업생 분께서 자기 학교에서 볼 만한 건 시계탑밖에 없다고 해서 '설마' 그랬는데, 그 '설마'가 맞았습니다. 포항공대는 관광을 할 만한 그런 학교는 아닙니다. 철저하게 학업과 연구 중심의 시설물만 딱 있습니다. 그 흔한 '밥집', '매점'도 눈에 안 보입니다.

원래 아크로팬이 포항공대 출입매체이긴 해도, 기껏 서울에서 포항까지 와서 처음 물어보는 말이 점심시간인데 밥집 어디있냐고 물어봤다는 건 지금 와 생각해봐도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단 답을 얻기론 밥집이 3곳이 있다고 합니다. 단, 차 없이는 가기 어렵다더군요.

포항공대를 간 이유는 슈퍼컴퓨팅 관련 세미나와 업계 관계자 분들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나름 업무출장이었지요. 이 때문에 소녀시대 출사를 버리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아침녁에 영일만까지 하늘에서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는 도시라서 새삼 들뜨기도 했지만, 해가 저물어 가면서 서울에서 있을 행사 때문에 심란했지요.

어쨋든. 포항공대에서 슈퍼컴퓨팅 분야에 대해서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이야 제가 안 나타났다면 일단 객관적으로 외부평가를 가하면 비중이 상당히 떨어지는 곳. 그런데 제가 저 멀리 포항까지 직접 날아가게 만들었다는 건 포항공대에서 하는 일들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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